하이퐁 정착기, 그리고 구단주의 다음 스텝

SW ENT 세계관 37편 – 정착, 그리고 또 하나의 시작 ※ 이 콘텐츠는 창작자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된 《SW ENT》 세계관 내 가상 시뮬레이션 서사로, 실제 시스템이나 운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2연패 이후, 다시 무대 뒤로 물러나다 SW 토트넘과 SW 샌디에이고가 각각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시리즈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주인 나로서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름만 올려놓았을 뿐, 실질적인 운영은 제임스와 잭 에버렛에게 완전히 위임했다. 제임스는 토트넘 운영의 중심을, 잭은 샌디에이고의 모든 실무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보다 능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는 내 손을 거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 SW 하이퐁 예술창작학교의 성장 한국 SW 본사에서 파견된 선생님들도 각자의 열정과 철학으로 하이퐁 예술창작학교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가르치는 교육자가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예술을 '공동 창작'한다는 철학을 가진 이들이었다. 나 역시 그 철학에 공감했고, 그래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 땀박강 개발사업, 하이퐁의 운명을 바꿀 프로젝트 내가 직접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하이퐁 중심을 가로지르는 땀박강 개발사업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이 강줄기를 따라 자리 잡고 있었고, 앞으로 이 도시에서 살아갈 가족과 나의 삶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은 그냥 방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하이퐁시 건설국 관계자, 그리고 해당 공사를 주관하는 빈건설 책임자들을 수시로 만나 진행상황을 확인했다. 계획대로만 완공된다면, 이 강변은 하이퐁을 넘어 아시아 도시개발의 새로운 교과서가 될 것이며, 세계가 경악할 만한 '기적의 도시 재생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일상과 창작, 그리고 블로그 한편, 나는 평소 집에서 곡을 쓰거나, 가족과 여행을 가거나, 특히 아들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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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ENT 세계관 29편 – 하이퐁의 미소, 사랑이 되기까지

※ 이 콘텐츠는 창작자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된 《SW ENT》 세계관 내 가상 시뮬레이션 서사로, 실제 시스템이나 운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회기 인생에 찾아온 예외

나는 사실 스스로를 ‘회기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시간 앞에 냉정하고, 감정은 제쳐두고, 계산과 전략으로 움직이는 삶. 그래서 여자를 만나도 연애를 해도 마음이 크게 흔들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하이퐁의 한적한 골목에서 마주친 그녀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깨웠다.

그때 이후로 그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냥 넘기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와 친구의 아내에게 내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말도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는 게 나도 이상했지만, 그게 사람이니까. 친구 아내는 내 설명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겠다며 말했다.

“그 사람이 맞다면 아직 미혼이고, 나이 28살. 저랑 친한 이웃 동생이에요.”

그리고는 저녁에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 첫 만남

저녁 무렵, 대문을 통해 한 여인이 들어섰다. 아침에 봤던 그 여인이었다. 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고, 한편으론 온몸이 긴장됐다. SW 엔터 그룹 안에서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대화했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감정이었다. 이성으로서 한 사람을 보는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식사 자리에 앉았지만, 나는 말이 없어졌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밥만 먹고 있었고, 친구 아내가 중간에서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며 다리를 놨다. 결국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친구 아내의 통역을 통해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진심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어머니는 약 3년간 혈액암으로 투병하셨고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도 오랜 시간 어머니를 간병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마음속에 품은 채, 시내 소아과 클리닉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내 신분에 대해선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작은 투자회사 대표”라고만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그 시점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 아내는 그녀에게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눈 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짧은 한마디가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하롱베이의 추억과 영상통화의 일상

그날 이후 우리는 함께 식사하고, 친구 가족과 함께 하롱베이 여행도 다녀오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아쉽지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때부터 우리 두 사람의 진짜 연애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은 흐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했고, 하루 10분이라도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허전했다. 문자도 자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나는 2~3개월에 한 번씩 하이퐁을 찾았고, 세 번째 방문 때 그녀는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비행기 타기 직전, 그녀는 자신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내게 걸어주며 처음으로 말했다.

“사랑해요.”

그 한마디에 나는 확신했다. 더 이상 이 사람을 두고 살 수 없겠다는 걸.


결혼,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

그렇게 우리는 1년 동안 애틋한 연애를 이어갔고, 2015년 2월, 나는 하이퐁에 다시 날아가 베트남 전통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베트남과 한국 양국에 혼인신고를 마치며 법적인 부부가 되었다.

그때쯤 그녀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해 일상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고, 나 역시 개인 과외를 받으며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언어는 생각보다 쉽게 익혀졌다. 우리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 6개월 후, 아잉은 한국으로 왔고 우리는 인천 송도의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사람이 처음 함께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진짜 가족이 되어갔다. 우리는 함께 밥을 해 먹고, 퇴근 후 손잡고 산책하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단 하나, 아잉은 아이에 대한 걱정을 종종 내비쳤다. 나도 일부러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지금의 SW 철학의 시작은 그녀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과정이 SW 엔터테인먼트를 만든 ‘나’라는 사람의 핵심을 결정짓는 순간들이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선택, 계산보다 직감이 이끌었던 결단. 그녀와의 만남은 단지 사랑을 넘어서서,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답게 담아내는 콘텐츠 철학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SW는, 어쩌면 그때의 내가 품었던 ‘그녀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장의 시작

시간이 흘러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어느 날 아잉이 말했다.

“오빠, 우리 병원에 한번 가보자.”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이제 우리의 다음 장이 시작된다는 것을.


— SW ENT 세계관 30편에서 계속됩니다.

👉 다음 편 보러가기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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